오늘 드디어(!) AI 교육에 대해서 후기를 쓰게 되었다.
일부러 제목에 약간 어그로를 끌었는데, 이유가 다 있다.
처음엔 무난하게 '~AI 교육 후기'라는 식으로 가려고 했지만
결국 포장을 까보면 '왜 내가 실망했는가'를 말하는 것밖에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쉴드를 치자면 난 포스코 아카데미를 통해서 얻어간 게 정말 많다.
그리고 기업과 학교 차원에서 나를 포함한 교육 동기들에게 이렇게 훌륭한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매우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에 하는 건전한 비판이라고 봐줬으면 한다(제발 신고하지 마세요ㅠㅠ)
포스코 아카데미는 누가 진행하는가?
아카데미 교육을 들어본 적 없는 분들을 위해 프로그램 진행 방식을 아래 표로 정리해봤다.
운영 주체 | 교육 담당 | 교육 방식 | 특징 |
포스코 인재창조원 | 각 반별 강사님(현업 실무자 출신) / 조교님(현업 출신, 프로젝트 주차만) | 1주 (파이썬 기초) - 3주(빅데이터 분석 및 통계 이론과 실습 병행) - 1주(프로젝트 준비 및 발표와 피드백) | -실습 과제 양이 꽤 많음 - 거의 매일 9to6 강사님과 같은 실습실 내에서 수업 및 프로젝트 준비를 같이 진행 프로젝트 발표 및 피드백이 빈번함 |
포항공과대학교 인공지능연구원 |
포스텍 교수님 / 조교(또는 연구부 소속 연구원) | 이론(교수님 수업) - 실습(조교님) 과정을 조별 AI 프로젝트 준비와 병행 주차별 프로젝트 중간 발표 후 피드백 진행 |
- 프로젝트 자문을 구하기 쉽지 않음 - 마지막 프로젝트 준비 주차에는 수업이 아예 없음 - 프로젝트용 하드웨어 구매 비용이 따로 지원 |
교육 운영 주체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빅데이터 - 포스코 인재창조원(회사, 기업)
- AI -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인공지능연구원(학교)
같은 포스코 계열이지만, 교육 운영 주체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교육 운영 방식이나 인력, 예산 등도 모두 다르다는 걸 감안하자. 그러면 내 글이 더 잘 이해될 수도 있을지도?
1. 자율인가 방임인가? AI 프로젝트의 관리 방식
처음 빅데이터 프로젝트와 비슷한 기대를 품고 AI 수업을 듣다보면 살짝 당황할 수도 있다.
이론과 실습 수업을 아무리 들어도 AI 프로젝트 관련해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주간 때 강사님(호칭은 '교수님')이 계속 실습실에 머무르면서
프로젝트 중간 발표도 매일 진행하고 피드백 받고 옆에 조교님이 있으면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그랬다.
물론 그만큼 쉴 틈이 없어 힘들긴 했지만...
그러나 AI 프로젝트는 각 조별로 철저히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각 조가 스스로 이전 기수 프로젝트를 분석하고, 주제를 선정하고, 코드를 짜고 하드웨어를 완성해야 한다.
'아니 나는 AI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짧은 기간 안에 완성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엔 다들 어떻게든 하게 된다.(윤은영 교수님 피셜 '초능력')
그럼 이게 왜 문제일까? 난 먼저 AI라는 분야 자체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AI는 어렵다, 그것도 꽤나 많이
AI는 어렵다. 그것도 꽤 많이 어렵다.
요즘엔 널린 게 딥러닝 입문서나 무료 온라인 강의이기 때문에
독학이야 맘먹고 할 순 있지만 그래도 전공 지식이 없는 초보자가 깊이있게 배우기는 꽤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름 컴퓨터와 수학 천재라는 사람들이 모여 수십년 동안 연구한 성과가 쌓인 게 지금의 AI 기술인데
일주일, 아니 한 달 정도면 다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오만 아닐까?
그리고 주제가 자율주행이 됐든 생성AI가 됐든 프로젝트를 정말 본인 힘으로 구현하려면
코드를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딥러닝 모델의 기초 개념뿐만 아니라 PyTorch 프레임워크 사용법, task별 모델 특성과
모델 hyperparameter 튜닝과 학습 방식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딥러닝 환경 구축하고 에러(CUDA error, 메모리 초과, 텐서 차원 안 맞음 등등,,) 잡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가? 딥러닝 모델을 처음부터 직접 구축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 같다.
나는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과 직접 코드 한 줄씩 쳐보면서 에러를 해결하는 것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프로젝트를 구현하기 위한 학습 방식은 후자이어야 한다.
반면에 포빅아의 교육 일정은 진도도 워낙 빠르고 많은 걸 짧은 시간 안에 가르치다 보니
입문자로서 교육생이 포빅아에서 AI를 심도있게 배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비전 수업 당시 포스텍 조성현 교수님이 지나가듯이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교수님의 조언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훨씬 잘 대변하는 것 같아 적어본다.
"나는 내가 AI를 주제로 하는 강의를 크게 2가지로 나눠서 보고 있다.
하나는 정말로 학생들의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을 심화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그 분야에 대한 소개를 하기 위함이다.
내가 강의를 한 후에도 여러분이 이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컴퓨터 비전이라는 분야가 어떤 학문이며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찬찬히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 환경 구축이나 에러 발생에 대해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
실습 수업 때 기본적으로 Anaconda 가상환경을 만들고 CUDA 드라이버와 PyTorch를 설치하는 작업을 거친다.
프로젝트 때도 CUDA 관련 에러 때문에 워낙 애를 먹었던 적이 많지만, 이건 실습 때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치자.
AI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대체로 많이 쓰는 게 라즈베리파이, 엔비디아 젯슨 나노, 로봇팔(ROS) 등이다.
이런 하드웨어(or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면 결국 컴퓨터에 관련 모듈을 설치해야 하는데
모듈을 설치하고 환경을 구축하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게다가 하드웨어와 컴퓨터 간 통신도 구현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다.
부끄럽지만 나도 라즈베리파이와 실습실 컴퓨터 사이 통신 구축을 하는 데 3일 이상이 걸렸다.
빠듯한 AI 프로젝트 준비 기간에서 3일이면 정말 아까운 시간이다.
근데 사실 통신 구축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돌이켜보면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는 내가 직접 시행착오를 일일이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 '이 방법은 어차피 안되니까 시도하지마, 이건 해봤자 시간 낭비고 이렇게 바로 시작해'
라고만 알려줬어도 며칠을 아낄 수 있는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 교육 동기들끼리도 '여기서 AI가 아니라 환경 구축만 배워간다'고 우스개소리할 정도였다.
만약 이런 부분에서 자문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 (추가) 참고용으로 이전 기수가 작성한 프로젝트 보고서가 있긴 하지만 설명이 빈약한 게 대부분이다.
심지어 에러 투성이인 코드가 그대로 첨부되어 있는 경우도...!
매 기수마다 교육생들이 같은 부분에서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겪고 시간을 허비할 걸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다.
차라리 교육생들로 하여금 환경과 하드웨어 구축에 투자할 시간을 줄이고
AI 모델 개발에 좀 더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줬다면 어땠을까(그럼 우리 조가 우수상 탔겠지? 라는 착각)
2. 되풀이되는 프로젝트 주제와 구현
AI 교육 첫 주에 윤은영 교수님이 이전 기수 시연 영상을 몇 개 보여주면서
아예 새로운 주제(기업이 좋아하는)를 시도하거나, 이전 기수 AI 프로젝트를 심화하거나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문제는 AI 기술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발전해가는데
입문자가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최근 기수는 모두 기존 프로젝트 주제를 살짝한 변형하거나 컨셉만 다르게 해서 포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냉정하게 봤을 때 포빅아 내 AI 프로젝트의 기술적 구현 완성도는
이미 17~18기 쯤에 정점에 다다라서 새로운 주제로 파고들지 않는 이상 더 발전시킬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하드웨어(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등)를 사용해야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인식이 너무 만연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히려 주제가 한정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지금도 수요가 꾸준히 있겠지만
하드웨어(드론, 로봇, RC카, 키오스크) + 카메라 + object detection / image classification
레퍼토리는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등장했고,
강화학습 + 디지털 트윈(Unity, Unreal 엔진 사용) + 물류 적재
의 조합도 간혹 있긴 하지만 이전 기수에서 이미 시도해봤던 주제에 불과하다.
차라리 교육생에게 주제 선정의 자유를 완전히 부여하기보다는 큰 틀을 먼저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이 프로그램은 결국 취업을 위한 목적이고, AI 프로젝트 또한 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볼 만한 주제로 선정하는 게
바람직하니 (실제로도 그렇게 권하고 있고) 차라리 기업이 원하는 주제를 몇 가지 가져와서 교육생들에게
할당한다면 주제 선정에 투자할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3. 이론과 실습 수업의 참여 저조
AI 이론 교육 시간에는 포스텍의 교수님들이 돌아가면서 분야별로(알고리즘, 딥러닝 입문, CV, NLP)
강의를 진행하지만 막상 그걸 제대로 듣는 교육생들은 거의 없다.
그 이유를 정리해보면
1) 다들 프로젝트하느라 정신이 없다. 맨날 밤새서 프로젝트하고 자소서 쓰느라 수업은 안중에도 없다!
2) 강의가 너무 졸리다...!
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교수님들 강의를 별일 없으면 끝까지 들으려고 했다.
교수님 현장 강의도 어떻게 보면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혜택인데,
난 이 교육에서 빼먹을 수 있는 혜택은 다 쏙쏙 빼먹고 가자는 거머리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자소서 작성과 하드웨어 물품 구매 때문에 수업 중 잠깐 딴짓을 한 적도 있었지만
첫 주차의 김동우 교수님 강의는 특히 열중하면서 들었던 것 같다. (우리 교육 동기들끼리도 김동우 교수님 강의는
특히 평이 좋았습니다. 계속 강의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음 기수에서도 열린다면 꼭 열심히 듣길 추천!)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전반적인 수업 참여가 저조했던 건 사실이다.
실습도 마찬가지였다.
실습은 특히 대학원 조교님들이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강의 전달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수업을 안 들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더 이유를 생각해보면,
수업 분위기가 빅데이터 주간만큼 적극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빅데이터 때는 수업을 듣지 않으면 그날 제출해야 하는 실습 과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반면
AI 교육은 실습 과제 양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제출일도 넉넉했기 때문이다.
AI 프로젝트를 더 준비할 수 있도록 실습 과제 부담을 줄인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AI 교육에서 배워가는 게 적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사람은 강제로 시켜야 배운다
4. 하드웨어 배송 지연
당시 우리 조는 자율주행을 주제로 진행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진도를 빼기 위해선 하드웨어(RC카, 라즈베리파이, 모터 등)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매 물품 목록을 빨리 제출해도, 몇 번을 재촉해도 물품 구매는 당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우리 조가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준비해서
먼저 주제 선정한 다음에 구매할 하드웨어 목록을 일찍 제출했다면,
그만큼 일찍 물품 배송을 받아서 더 많은 준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우리 조는 나름 주제 선정을 빨리 한 편이었지만
행정팀에게 물어보니 모든 조(12개)가 다 주제를 확정한 다음에 물품 구매를 진행한다는 답변이 왔고
그 사이 며칠을 애타게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뭐든지 일괄 처리하는 게 행정상 제일 편한 법이니까
이건 비용 처리를 비롯한 각종 행정 절차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자.
날 정말 화나게 했던 건 물품 대여였다.
참고로 물품 대여란, 직접 구매 물품을 받기까지는 배송이 너무 오래 걸리니
이전 기수들이 쓰지 않고 남겨둔 물품을 대여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분명 똑똑히 기억한다.
프로젝트 발표 주차 2주 전 금요일 수업 후 프로젝트 준비 시간이 있었고
행정팀에게 물품 대여는 언제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어떠한 이유로 안된다고 답변이 왔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수업이 끝나기 전 다시 물었다.
오늘(그날 월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이 풀로 차있었기 때문에
대여해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오후 6시면 칼퇴를 해야 하는 행정팀과 달리 우리는 퇴근이란 게 없었기 때문에 또 남아서 회의만 했다.
그렇게 화요일이 되어서야 물품 대여를 받을 수 있었다.
물품 대여는 딱 45분이 걸렸다.
물품 대여 받을 순서는 반별로 반장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했다.
내가 '각 조별로 빌릴 수 있는 물품 종류와 개수 제한이 따로 있느냐'고 물었을 때
'따로 제한은 없지만 다른 교육생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만 대여해달라'는 답변이 온 걸 보고선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지만 꾹 참았다.
우리 반이 맨 뒷 순서였지만 다행히 우리 조가 필요한 물품(라즈베리파이, SD 카드 등)은 대강 챙길 수 있었다.
만약 지난주 금요일에 행정팀 아무나 한 분이라도 잠깐 시간을 내서 대여 창고를 열어주었다면,
주말(포빅아 교육생에게 주말 이틀은 꽤 긴 시간이다)에 별 소득 없는 회의만 하는 대신
라즈베리파이나 간단한 하드웨어로 소켓 통신 구현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보여주기 식의 대여 물품 목록 작성, 개수 제한도 없는 관리 방식,
잠금 장치도 없는 대여 창고(심지어 행정팀 건물도 아니고 실습실과 같은 건물 4층 휴게실에 있었다)를 보면
왜 그냥 첫 주부터 물품 대여를 진행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행정팀은 하루라도 빨리 프로젝트를 진전시키고 싶은 교육생들의 간절한 마음을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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